“도대체 인문학이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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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인문학이 뭔가요?”
  • 엄수진 서울대 건축학과 석사과정
  • 승인 2009.08.30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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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대생의 인문학 컴플렉스 타학문 간 단절에서 비롯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로통합적 상상력 키워나가야 -
   
 얼마 전 인문학적인 상상력으로 도시공간의 문제를 고찰한다는 취지의 논문공모전 워크샵에 갔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그 워크샵은 공모전에 참가한 도시·건축 전공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자신의 논문 개요를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많은 경우 패널들이 논문의 주제 및 접근방법에 대해 강경한 비판을 제기했고 점점 워크샵의 분위기는 어두워져 갔다. 그러다 한 학생이 참다못해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인문학이 뭔가요?” 한 패널이 대답을 하기 전까지 잠시 미묘한 정적이 흘렀지만, 마치 모든 참가자들이 그 대답을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몇 공대생들에게 인문학이라는 최근의 어떤 경향은 콤플렉스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인문학이 무엇이고 무엇을 사유하는 학문인지 이공계 교육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배울 기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과 대안은 이공계 학생의 개인적 자질 문제로만 곧잘 환원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문학은 바로 개인과 집단의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학문이며 태도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은 서로 다른 지형을 횡단할 때 성취되는 것이며 또한 상상력이 그 횡단을 더욱 촉진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어느 공대 학생의 질문에서 보듯, 인문사회계와 이공계의 단절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시작된다. 우리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 서로 다른 교실에서 다른 내용의 책을 읽고 자라 서로를 다르다고 규정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의 대학 교육 또한 서로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인문대에서 처음 전과했을 무렵, 당시 건축과에서 진행되는 여러 형태의 강의에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 인문대에서만 머물렀다면 결코 스튜디오 실기 수업의 신랄한 크리틱을 통한 성장과 컴퓨터 언어의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룻밤을 꼬박 새서 C 언어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해서 실행시켰을 때 오는 그 뿌듯함! 깨끗하게 정돈된 프로그래밍 코드의 완벽한 배열은 말라르메의 잘 짜인 시만큼이나 아름답다. 마찬가지로 공대에 와서도 많은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때때로 생각에 잠긴다. 차이나타운이 그저 붉은 가로등을 설치하고 바닥에 파란 페인트를 칠하면 되는 ‘자장면 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어렵게 고향을 등지고 건너와 낯선 곳에서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더 많은 삶에 대해 귀를 기울일 때 상상력은 고양된다. 다른 삶,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확신할 때 상상력은 소통의 기반이 된다. 상상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삶조차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이공계 학생들이 인문학을 일상적 차원에서 사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인문사회계 학생들이 이공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사회계의 언어적 상상력과 이공계의 수학적 혹은 공간적 상상력은 충분히 교류돼야 한다. 이미 우리의 현실은 어느 한 쪽의 상상력만으로는 구성될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다.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상상력이야말로 더 많은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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