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유채꽃 만발한 제주도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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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유채꽃 만발한 제주도에 반하다.
  • 정명섭
  • 승인 2016.03.14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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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닿아 있는 굴이 있어서 '굴이 있는 산' 산방산이 유채꽃 밭 너머로 보인다. 제주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문득 제주 티켓이 싸게 나왔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이참에 제주도 한번 다녀오자며 한 두 마디 주고 받던 것이 흥이 올라 결국 티켓 예매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전에 제주도를 가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더욱 기대가 컸다. 아, 드디어 그토록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고 계절마다 다녀 오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제주에 집까지 사 놓고 들락거린다는 그곳으로 떠나는구나! 초행길인지라 이번 여행에는 특히 기대가 컸다.

 그리고 며칠 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제주도에 도착해 있었다. 공항 근처 식당에서 전복 뚝배기로 배를 채우고 여행길에 올랐다.

   
▲ 서귀포 표선 해비치의 검은 바위 위로 빌딩만큼 커다란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는 내가 꿈꾸던 낭만 그대로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먼저 변덕스러운 제주도의 날씨가 말썽이었다. 하필이면 비, 바람, 눈이 동시에 몰아치는 얄궂은 날씨에 여행을 하게 된 것.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사진 찍기 힘든 날씨가 올인원(All-in-one)으로 제공된 셈이다.

 게다가 지인의 거친 차 운전 솜씨까지 겹치니, 스물스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가 만난 제주의 첫 느낌이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된 것은 그 와중에도 빛나는 차창 밖 풍경이었다.

   
 
   동백은 지지 않는다. 다만 떨어질 뿐

 동백꽃 하면 생각나는 게 뭐가 있을까? 제일 먼저 동백꽃 대단지로 유명한 카멜리아 힐에 도착해서 든 생각이었다.
 동백 관련 싯구절을 읽었던 것은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 중딩 시절이 마지막. 어렴풋 기억나는 구절은 그저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 어쩌구 하던 것이 다였다. 그런데 조용한 카멜리아 힐에서 촬영을 하던 중, 등 뒤에서 들려오는 툭!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 돌아보니 고작 동백꽃 떨어진 소리였던 것이다.

 아, 이래서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라는 표현이 나왔구나 싶었다. 주먹보다 큰 송이가 통째로 툭, 하고 지면으로 떨어지는 동백꽃의 소리 말이다.
 이제 와서 시인의 마음을 헤아린 것은 아니지만 그 싯구절을 읽은 것이 언제인데 참 빨리도 깨닫는다 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제주는 유채다

 성산포를 향하는 길,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이 보이면 차를 세웠다. 어디에 차를 세우든 장소의 이름 따위 알고 싶지도 않을 만큼 제주와 제주의 유채는 아름다웠다.
 지인이 차에서 내리면서 한마디 한다. "그래, 제주는 유채지!" 그래, 제주는 유채다. 아름다웠다.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유채꽃 밭이 아니어도,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유채꽃 밭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밭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수익이 되질 않아 유채꽃 재배 농가는 점점 줄어드는 실정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여행자의 바람으로 해결 될 문제는 아니므로 앞으로 점점 보기 힘들어 질 제주의 유채꽃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 군산 굴메 오름의 일몰
  오름에서 만난 일몰

 군산 굴메 오름에 올랐더니 멀리 한라산이 보였다. 아쉽지만 이번 여행에 한라산 코스는 없다. 한라산은 다음으로 기약하고 이번엔 군산 굴메 오름의 일몰로 대신했다.
 멀리 중문 단지가 바라보이는 제주 오름에서의 일몰. 바다를 마주할 때 느끼는 '속 시원함'과는 또 차원이 다른 감정이 느껴져 감개무량했다.

   
▲ 성산포 광치기 해변의 일출
  성산포에서 만난 일출

 제주를 찾는 사람 절반은 한라산을 오르고 나머지 절반은 성산포를 찾는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을 정도로 성산포는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여행을 했을 때는 광치기 해변을 새단장 하는 것인지 해변 전체를 파내는 공사가 한창 이었다. 하필이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랴! 이 또한 여행인 것을. 그러나 아침 댓바람을 뚫고 세 시간을 운전해 성산포를 찾아온 까닭에 아쉬움은 컸다.

 여담이지만 제주도에는 참 60km 이내의 저속 구간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장엄한 일출을 만나기 위해 눈 부비며 이른 길을 나선 여행객에게 '속도 제한'은 조바심을 부른다.
 이렇게 어렵게 찾아온 성산포 일출은 새침 떠는 새색시 마냥 고왔다. 여러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일출을 감상했다. 뜨는 해를 보고나니 이제야 슬며시 허기가 진다. 그리하여 민생고를 해결 하려는데 이른 시간이라 식당 찾는 것도 꽤 힘들었다. 그 덕분에 자판기 커피 한 잔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던, 그런 아침.

   
▲ 옥빛 월정리 모래 사장의 바위로 만들어진 고래 형상
  월정리, 그 곳에 가면

 월정리 세화 해변은 블로거들의 입소문 덕에 더욱 유명해진 지역이다. 하늘색을 고스란히 품고 여행객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바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다시 찾아 와,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고 여겼던 바다는 처음이었다.

 다정한 제주의 집

   

 몽돌 가득한 해변에 앉아 몽돌이 자그작 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세상 시름 모두 내려 놓고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여행객의 시선은 아랑 곳 없이 가까운 바다에서는 우리의 어머님들이 열심히 바닷속을 들락 거리며 생업에 종사 중이셨다. 알작지의 오래 된 집들은 제주의 심한 바람을 견딜 수 있게 낮아 올망스러웠는데 이방인에게는 그런 모양이 한결 같이 다정해 보이기만 했다.

   
▲ 김영갑 작가의 생전 모습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제주도는 일찌감치 터를 잡은 예술가들이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분은 꼽으라면 고 김영갑 선생일 것이다. 사진이 좋아 막노동을 생업으로 삼고 그 돈으로 필름을 사며 사진을 남겼던 사람.
 제주의 아름다움에 빠져 파노라마 필름을 고수하며 제주를 사랑했던 그가 생전에 마련한 사진공간은 이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어 갤러리 카페와 대안 갤러리의 효시가 되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 또 그렇게 인생을 오로지 한 가지 일에 투신 한다는 게 어디 평범한 사람이 꿈이나 꾸어 볼 수 있는 일인가 싶다. 그러나 언젠가 나도 꼭 한 번쯤은 따라해 보고 싶은... 그저 한번 둘러봤을 뿐인데 그의 삶이 내게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갤러리 두모악은 사진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 말고도 재미난 설정이 있다.
 우선 입장료를 내면 별도의 표를 주는 것이 아니고 김영갑 작가의 사진으로 만들어진 엽서를 준다. 평소 티켓 발권이 낭비라고 여겼던 사람들은 꽤 반가워 할 듯 싶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갤러리에 있는 오두막 닮은 카페의 운영 방식인데, 모든 것이 셀프로 이루어진다. 손님이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돈을 내면, 음식을 먹고 난 후 사용한 집기를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 소지섭 나무로 유명한 테쉬폰
  소지섭 나무로 유명한 테쉬폰

 당산봉에서 내려 와 테쉬폰으로 유명한 목장을 들러본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곳이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아랍식 구조물이라 신선하기만 하다. 그리고 배우 소지섭이 광고를 찍어 유명해 졌다는 일명 '소지섭 나무'를 찾았다. 실상은 전혀 볼 것 없이 나무 한 그루 덜렁 있는 것이 전부였지만 여행은 언제나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찾고 또 인증하는 과정 아니던가.

   

   

  바다를 달리는 말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협재 해변의 아름다운 옥빛 바다를 바라보며 저마다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근처에서 어느 동호인들이 한껏 뽐을 내며 승마를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집 근처에서 봤다면 그렇게까지 부럽지 않았을텐데 역시 제주였기 때문일까? 푸른 바다 위를 갈기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이 어찌나 멋지던지...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돌아서지 않았지만 비행기 시간 전에 마지막 예정지인 섭지코지를 향했다.

   
 
  섭지코지에 쌓인 세월

 한라산과 성산포 그리고 섭지코지라면 제주 투어를 절반은 채운 셈이라고들 한다. 특히 섭지코지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들은 감동 또 감동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한라산을 오르지 못했으니 제주를 또 찾아야 할 구실은 충분히 남겨 둔 셈이다. 이렇듯 사진을 정리하다보면 제주의 매력을 다시 깨닫게 된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단 한 번의 방문으로 제주홀릭이 되었나 보다.

   
▲ 섭지코지의 드라마 '올인' 촬영지로 유명한 성당
   
▲ 제주의 봄은 유채와 함께 시작 된다
  INFORMATION

 - 월정리 모래비카페 :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536-4 tel.064)782-2306
 -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 입장료 3000원,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37-5 tel.064)784-9907

  매헌

   
 매헌 정명섭_ TV 시리즈 '하얀마음백구' 연출감독 / 단편영화 '맛있는커피','구토','가방' 시나리오 연출 촬영 편집 / TV 드라마 '태왕사신기' 콘티 감독 / 포토스튜디오 '메이플스튜디오' 운영 / 현재 네이버웹툰 '비싼남자 비싼여자' 연재 및 프리랜서 사진작가 http://facebook.com/Snapsazin, jms1126@face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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