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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원한경
2019년 05월 24일 (금) 17:01:06 강희경 편집기자 khk8397@naver.com

 대학 3학년 때 원한경으로 부터 1학기 미국 문학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원한경은 연세대 교정에 우뚝 서있는 원두우박사의 아들로 사투리가 섞인 우리 말이기는 했지만 유창하게 강의를 하였다. 내가 느끼기는 원한경은 미국문학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는 것만 같았다. 미국 문인들에 관련된 숨겨진 이야기들도 낱낱이 들추어내어 알려 주기 때문에 그의 강의는 시종여일 흥미진진하였다.

 그의 아들 원일한에게서는 영어작문을 배웠는데 그의 아들은 한국말이 지나쳐 “유치하다”라고 하지 않고 “유치적이다”라고 하여 학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언젠가 캠퍼스 어느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원한경의 저택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원한경이 이순신광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의 서재에는 충무공의 거북선 모형이 있어서 눈에 띄었고 엄청난 수의 관련 서적들을 수집해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사실은 그의 부인이 그 저택에서 해방 뒤 괴한의 총탄을 맞고 쓰러져 세상을 떠난 사실이다.
 화창한 어느 여름날이었는데 원한경의 부인이 주최하는 한국 부인들의 모임이 그 저택에서 있었는데 그 모임에는 그 시대의 여걸 모윤숙이 초대 받아 와 있었다. 그 정보를 가진 괴한들이 모윤숙을 저격하고자 잠입한 자객의 총에 엉뚱하게도 원한경의 부인이 맞아 그 자리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 갔으나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김동길 선생

 더욱 잊혀지지 않는 것은 우리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그 부인이 인물도 잘생기고 사람됨도 호인이었는데 학생들에게 숙제를 준 일이 있었다.
 삼일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바치라는 것이었다. 힘든 숙제이었지만 최선을 다하여 마무리를 짓고 제출한지 며칠 안 되던 때여서 그 번역은 평가를 받아 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는데 그 부인의 추모예배가 얼마 뒤에 연희대학의 노천강당에서 개최되었다.

 학생 전원이 참석하였고 손님들도 각계각층에서 상당수 무대 위에 마련되어 있는 내빈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학생을 대표하여 추모의 글을 써서 읽어야만 했다. 그래 추모사에서 나는 삼일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번역해 제출을 했지만 읽고 채점하여 내 작품을 돌려 주어야 할 사모님은 세상에 계시지 않다고 하였는데 김태환이라는 내 친구가 줄곧 무대를 지켜보다가 총장 백낙준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고 내게 전해 주었다.
 매우 우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 날의 추모예배가 나로 하여금 당시에 연희대학의 명물이 되게 한 것이었다. 그 사실 때문에 내가 연대 총학생회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원한경은 1890년 9월에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뉴욕 대학에 가서 학업을 마치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한국에 선교사로 다시 부임하였다. 그는 연희전문에서 최초로 사회학을 강의한 사람이고 뉴욕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원한경은 1934년 연희전문의 제3대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의 조선지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그 학회지를 통해 한국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기도 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선교사와 그의 가족은 모두 본국으로 추방 되었을 때 원한경 일가도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해방이 되던 그 해 돌아와 당시에 미군정청에 고문으로 일하였는데 군용 짚차를 타고 자택에서부터 군정청이 자리잡고 있던 중앙청 건물까지 15분이면 간다고 하여 우리를 모두 놀라게 하였다.
 원한경은 키가 작은 편이었지만 당돌하게 생겼고 누구를 대하나 늘 쾌활하였다. 그가 만든 영한사전이 한국 최초의 영한사전은 아니었겠지만 당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외국인들이 쉬운 한국말을 익히도록 하기 위하여 편찬한 〈일용 조선어〉 (Every Day Korean)는 많은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말을 배우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진영에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옛날의 제자 목사 강성갑이 악한들의 음모로 강변에서 총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감추지 못하면서 “연희전문이 낳은 가장 훌륭한 졸업생 한 사람이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 통탄스럽다”고 하였다고 나는 전해 들었다.

 원한경은 6.25 전쟁 중에 부산에서 병을 얻어 본국으로 이송될 생각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는데, 6.25가 터진 초기에 그가 한국을 위하여 쏟은 정열은 엄청난 것이었으나 전후의 복구는 전혀 보지도 못하고 한창 일할 나이 61세에 본향인 하늘나라로 갔다.

 선교사들 중에 선교사요, 학식이 남달리 풍부하던 원두우의 아들 원한경을 가까이 알고 그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감격한다. 그는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부인과 함께 양화진의 선교사 묘지에 고이 잠들어 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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