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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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사람들 -김동길의 인물에세이- 김우중
  • 김선형 편집기자
  • 승인 2019.08.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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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화에 큰 공헌을 한 기업가 세 사람의 이름을 들라고 하면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대우의 김우중 이들 세 사람의 이름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서울역 앞을 지날 때마다 김우중이 거기에 세운 대우빌딩을 보고 나는 언제나 처량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해외여행을 떠나면 외국의 공항에 마련된 조그만 밀차에 DAEWOO라고 쓰여진 글자를 읽었을 때 한국인으로서 느낀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양의 대도시마다 번화한 거리에 어디엔가 대우의 광고판을 만날 수 있어서 많은 한국인들은 흐뭇한 느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칼럼에 100명의 사람들을 쓰면서 그의 이름을 올리려고 몇 번 노력한 적이 있지만 어떤 이들이 김우중의 대우가 많은 사람들에게 재정적 손실을 주었는지 아시냐고 따지며 제발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 김동길 선생

 그러나 나는 실패한 김우중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가 성공의 대도를 달리고 있었을 때 많은 한국인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낸 것도 사실 아닌가. 나는 실패한 김우중 만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성공했던 김우중을 생각하고 우리들은 그를 더 기억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오래 전에 대우 임원들에게 강의를 한 시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는 대우빌딩의 임원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의 일이 한창 잘 되던 때, 대우를 방문한 것이었다. 강의가 끝나고 김우중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도봉산 기슭에 대우가 인수한 공장들이 있는데 오늘 제가 거기를 가 봐야 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선생님 거기에 함께 가셔서 많은 직원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기꺼이 함께 가서 강의를 하겠다고 하고 나는 그의 차에 올라 타 앉아 그 도봉산 기슭까지 가면서 그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도 기억되는 그의 말 몇 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첫째는 돈을 얼마만큼 벌고 나니 이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고, 두 번째 기억나는 이야기는 6.25때 대구에 피난 가서 그가 겪은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북으로 납치되고 어머니 혼자서 피난생활을 꾸려나가는데 신문팔이로 몇 푼이라도 벌어서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었다. 
 그가 혼자 벌이를 하였는데 그는 겨우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튼튼한 다리로 종일 뛰어다니며 신문을 파니 다른 아이들보다는 수입이 훨씬 많았다고 하였다.

 늦게 집에 돌아오면 그의 어머니가 집안에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밥 한 그릇을 덮어 놓고 고단하게 뛰어다니다가 돌아온 아들에게 먹이려고 보관해 두었다는 것이다. 상 위에 올려진 그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 떠먹고 살펴보니 다른 식구들이 저녁을 못 먹은 것이 분명하였다.

 한 숟가락만 먹고 어린소년 김우중은 “엄마, 나 다른 아이들하고 뭘 같이 사 먹고 왔어요. 저는 배가 안 고파요.”라고 한 마디 하고 밥상을 물렸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남은 식구들이 그 밥을 나누어 먹은 것을 보고 밖에서 먹고 왔다고 식구들을 속인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고 그는 지금도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대구에 피난 가서 그렇게 생활한 가난한 한 때였습니다.” 그와의 그런 대화 속에서 나는 김우중이 어려서도 얼마나 큰 인물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김우중과 함께 하노이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가 그 곳에 세운 힐튼호텔은 월남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호텔이어서 각종 국제대회가 하노이 힐튼에서 열린다고 들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만 김우중의 이름을 모르는 월남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었다.

 어찌보면 그는 한국 정치의 희생양이었다. 그가 실의에 가득 찬 나날을 보내다 마침내 세브란스병원에 들어가 특실도 아닌 방에 누워 있었다. 
 대학교수 선배가 몰락의 길을 더듬는 한 재벌 후배에게 금일봉을 들고 갔다.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한두 번 사양하다 그 봉투를 받아주었다. 그의 그런 너그러운 마음에 나는 거듭 감탄하였다.

 그를 믿고 대우에 투자 하였다가 크게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김우중 자신의 가슴은 더 쓰라렸을 것이다. 매우 똑똑했던 아들 선재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그런 슬픈 일이 있었던 그에게 대우의 몰락은 더욱 뼈저린 고통을 그에게 안겨주었을 것이다.

 서양의 역사책은 알렉산더 대왕, 줄리어스 시저 그리고 황제 나폴레옹을 삼대 영웅으로 친다. 그러나 그들의 일생도 한결같이 실패로, 비극으로 끝난 것이 사실이다. 끝까지 성공하는 사람만이 영웅은 아니다.

 실패 때문에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큰 인물은 역시 큰 인물로 대접해야 옳지 않을까? 나는 김우중 이야말로 조국 근대화의 한 몫을 한 기업인으로, 영웅으로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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