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엄마들. 생과 사의 피난길서 ‘참혹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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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엄마들. 생과 사의 피난길서 ‘참혹한 선택’
  • 박창환 사회부장
  • 승인 2011.08.13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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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 5세 이하 어린이들, 최근 석달새 2만9000명 숨져 -
 케냐 다다브 난민촌에 머무르고 있는 파두마 사코우 압둘라히 (29)는 일찍 남편을 잃고 기근을 견디다 못해 다섯 살, 네 살, 세 살, 두 살 된 자식과 갓난아이를 안고 다다브를 향해 떠났다. 난민촌에 도착하기 불과 하루 전날 두 아이를 잃었다. 잠이 든 줄 알았던 다섯 살배기 아들과 네 살 난 딸이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던 것. 물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갓난아이를 포함한 다른 3명의 자식을 생각하면 함부로 쓸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두 자식을 나무 그늘로 옮겨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식들이 깨어났을 것 같은 생각에 얼마 못 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하지만 다른 세 아이라도 살리기 위해선 피눈물을 머금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선택의 순간은 어머니만 강요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 난민촌에 있는 농민 출신 아흐메드 자파 누르 씨(50)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열네 살짜리 아들, 열세 살인 딸과 함께 케냐를 향한 피난길에 오른 누르 씨는 이틀 만에 물이 떨어졌다. 사흘째 되는 날 두 자식은 더는 걸을 수 없었다. 함께 갈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계속 지체하면 셋 다 목숨을 잃게 된다. 누르 씨는 고향에 남아 있는 5명의 자식과 아내를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다.

 "그들을 운명에 맡기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 몸의 일부와도 같은 자식들을 포기하는 것은 정말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난민촌에 도착해서도 그들의 얼굴이 어른거려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다. 하지만 누르 씨와 그의 자식들에게 운명은 미소를 던져주었다. 남기고 온 두 아이는 기적적으로 유목민에게 구조돼 소말리아의 엄마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누르 씨도 석 달 만에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6명의 자녀를 데리고 난민촌으로 가던 파퀴드 누르 엘미 씨는 세 살배기 아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숨졌을 때 엄마로서 해 줄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자식의 시신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덮어주고 하염없이 우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남은 다섯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죽은 아들을 위한 무덤을 팔 힘이 어디서 나겠나. 나에게 아들을 내려준 신이 그를 먼저 데리고 간 것뿐"이라고 엘미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다브 난민촌에서 활동하는 국제구호위원회 소속의 정신과 의사 존 키벨렝에 씨는 소말리아의 부모들은 극도의 압박감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다같이 죽을 순 없습니다. 그런 비정상적 상황에선 누군가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 달쯤 뒤면 부모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됩니다. 두고 온 아이들의 환영이 떠올라 밤낮으로 악몽에 시달리죠."

 AP통신이 12일 전한 다다브 난민촌의 비극은 지금 제3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애끊는 아픔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극심한 가뭄으로 지금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선 1200만 명의 주민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기근 피해지역으로 선포돼 당장 급박한 구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만 280만 명. 이 중 소말리아 주민은 45만 명이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석 달 동안 사망한 5세 이하 소말리아 어린이는 최소 2만9000명. 다른 가족을 위한 음식과 물을 아끼기 위해 거리에 버려진, 더는 걸을 수 없는 어린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아프리카에서 부모들이 선택을 강요받는 이유는 비단 가뭄 때문만은 아니다. 2009년엔 설사에 걸린 18개월 쌍둥이 아들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던 한 잠비아 부모의 사연이 한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알려졌다.
  보건소에는 한 명분의 약밖에 없었고 결국 부모는 상태가 좀 더 나은 동생을 선택했다. 치료를 받지 못한 형은 숨졌다. 이렇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5세 미만 아동은 아프리카에만 4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생사가 결정되는 긴급한 상황에서 한 자식만을 선택해야 하는 부모의 아픔은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치 수용소에서 가스실에 보낼 자식을 선택해야 했고 끝내 그 아픔 속에 몸부림치다 자살하는 부모를 그린 영화 '소피의 선택'(1982년)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에도 지진으로 무너진 기둥 아래 깔린 두 자식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묘사한 영화 '탕산대지진'이 중국과 한국 등에서 개봉돼 수천만 명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현실에서 그런 참혹한 비극은 카메라도, 펜도 지켜보지 않는 숱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멀리 아프리카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탈북자들의 수기에도 이런 비극은 수없이 등장한다. 어린 아들딸의 손을 잡고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두만강을 건너다 딸의 손을 그만 놓쳐버린 어머니. 아들마저 잃을까봐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딸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어머니는 끝내 미쳐버렸다.

 간신히 두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탈출했지만 딸을 한 명 팔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어떤 딸을 팔지 결정해야 했던 어머니도 많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 어머니들의 모성애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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