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세계 이주민의 날’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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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세계 이주민의 날’에 즈음하여
  • 문경희 창원대 다문화진흥원장
  • 승인 2013.12.19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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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이 날은 1990년 유엔 총회에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협약’(유엔이주노동자협약)이 통과된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2000년에 ‘세계 이주민의 날’이 유엔에 의해 공식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상당수 이주노동자 유입국 정부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행사나 사업을 공식적으로 크게 환영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유엔이주노동자협약에 서명한 국가가 2012년 기준 46개국에 불과한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 필자 문경희
 유엔이주노동자협약은 모든 이주 노동자와 가족은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이동·사상·표현·집회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내국인과 같은 사회보장서비스를 받아야 하며, 공정한 법 집행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미등록 상태의 이주민의 권리 또한 보장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때문에 가족동반을 거부하고, 일정 기간 동안만 ‘고용’을 허가하는 단기 순환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협약 비준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주자에 비해 임시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의 일반 법체계 바깥에 존재하며, 제한적이고 선별적인 권리만 가짐과 동시에 국가 사회통합 정책이나 프로그램에서도 소외된다. 실제 우리나라의 이주민 사회통합정책은 이미 국민이 된 이주민이나 향후 국민이 될 이주민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국민통합정책’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이는 우리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본국과 이주국 사이를 순환하는 노동 상품’ 정도로 간주하며, 그들의 순조로운 순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하지, 그들을 환대하거나 사회통합을 지원하고 권리 보호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거나 배제된 공간에서 생활한다.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만 본다고 하더라도 그들 상당수는 주로 지역의 여러 공단에,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소통 불가능’한 ‘간이 숙박소’ 같은 쪽방이나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에 주거하며,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는 ‘적절한 주거권’으로부터 배제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데에는 우리사회의 무관심과, 특히 이주노동자의 주거권 보장의 의무를 가진 우리 정부의 책임 회피라는 이유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적절한 주거’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없는 고용주의 노동비용 최소화 전략과 ‘국제 정거장’과 같은 임시 근로공간에서 주거비용 절감 효과를 통한 소득창출 극대화를 기대하는 이주노동자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공간 소외 문제는 그들의 생활공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작업장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이 영위되는 상업지구나 공원, 공공거리 등에서도 국민과 비국민,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 간의 배제와 차별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공간적 존재이고, 공간이 사회적 권력관계가 응축되어 나타나는 장이라는 점에서, 공간의 문제는 곧 권리의 문제이다. 즉, 공간의 부재는 곧 권리의 부재이며, 공간에서의 배제는 권리에서의 배제와 다름없다. 이런 점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권리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사회적 공간에서도 상당한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이틀 후면 올해 2013년의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지난 주말을 이용해서 전국에서 다양하게 개최된 올해 ‘세계 이주민의 날’ 행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대한 기념이나 자축의 내용은 없다. 작년에도 그 이전 해에도 그랬듯이, 올해에도 ‘세계 이주민의 날’은 우리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성토와 함께 권리를 주장하는 외침만이 가득찬 날이다. 그래도 올해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를 주체적으로 구성하는 엄연한 권리의 주체라는 점, 또한 그들이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공헌하는 바가 크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더욱 확산되어 궁극적으로 가까운 미래에 그들의 권리가 신장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념일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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