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세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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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세상이 아니다
  • 송경동 시인
  • 승인 2014.05.2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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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말을 잘 안 쓰긴 하지만 정말 스펙터클한 날들이다. 어제(21일)는 서울 강남 삼성전자 본관 앞에 있었다. 다시 추모시를 읽어야 했다.

   
▲ 송경동 시인
 지난 5월18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권력에 의해 시신이 탈취당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양산분회장 염호석님의 시신이었다. ‘5·18’ 광주가 데자뷰되었다. 그는 유서를 세 통 남겼다.
 첫 번째는 ‘아버지 어머니께’였는데, ‘제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때 장례를 치러달라’고 했다.
 두 번째 편지는 함께했던 ‘삼성서비스지회 여러분께’였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지 못하겠기에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달라’고 했다. 그는 동해안 정동진 해변가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곳을 택한 이유는 ‘해가 뜨는 곳’이어서,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직접고용 정규직화’ ‘민주노조 인정’ 등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되고 난 후에 화장해서 정동진에 자신을 뿌려달라고 했다.
 세 번째 유서는 간단했다. ‘상기 본인은 장례에 관한 모든 것을 삼성전자서비스노동조합(금속노동조합)에 위임합니다.’ 그리고 자필 서명과 사인을 했다. 설령 부모라 해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유서 내용이었다.     당연히 부모님들도 장례의 모든 것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위임했다. 하지만 이런 죽은 자의 최소한의 명예와 인권조차 삼성과 정부는 훼손했다.

 지난 일요일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시민들은 빨리 실종자들을 찾아내라고, 국민들을 수장한 무능한 대한민국 세월호의 선장 박근혜씨가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시위를 해 광화문 네거리가 마비되었다. 바로 그런 날 경찰이 영안실을 짓밟고 들어왔다. 상주인 노동자 수십명을 연행하고 시신을 탈취했다.

 알려진 대로 삼성전자는 본인들이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서비스업무를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자회사에 외주화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다시 160여곳의 도급업체에 이 업무를 외주화했다.
 이 도급업체들은 다시 1만여명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건당수수료를 주면서 노동착취를 자행해왔다. 선박에 대한 안전책임을 비정규직들로 채우고, ‘해피아’들로 이루어진 해운조합에, 한국선급에, 구조에 대한 책임은 해경 등과 유착관계로 보이는 언딘마린인더스트리에 외주화해온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AS 명목으로 1년에 1조7000억원을 소비자들에게서 걷어간다. 그러나 삼성은 이 중 6000억원 정도를 대주주로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에 외주도급비로 지불해왔을 뿐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그중 3300억원 정도만을 169개 협력사에 지불해왔다. 부당한 2중 도급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가 착복한 이윤만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대신 염호석님과 같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근무조건 속에서, 방문수리용 차량도, 공구도, 하다못해 작업복까지를 자비로 구매해야 했다. 이것은 명백한 사기이자, 반사회적 활동이다. 불법파견, 위장도급이지만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조사 내용에 따르면 평형수를 빼고 과적을 했지만, 관련 공무원들은 괜찮다고 사인을 해주었다. 어쩜 이리 똑같을까. 그러곤 이젠 고인의 시신까지 돈으로 매수를 한다.
 생부를 매수해 시신탈취의 명분을 만들었다. 부모가 자식의 유언을 배신하게 하는 인륜적으로 해선 안될 일이었다. 생모는 아직도 동의해주지 않고 있지만, 작전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경찰은 삼성의 사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실 확인도 없이 ‘112 신고’ 하나로 그렇게 빨리, 전격적으로 수백명의 경찰병력들의 작전이 가능할까. 구조신고 이후에도, 현장에 도착해서도 구해달라고 손 흔드는 사람들 단 한 사람도 살려내지 못한 무능한 정부, 무능한 공권력이었다.
 삼성은 이로 인해 대한민국 세월호 선장 박근혜씨와 함께 ‘이윤보다 생명을’이라는 모든 이들의 공적 1호가 되고 말았다. 넘어선 안될 상식의 선들이 있다. 이 선을 넘어서버린 삼성의 신화가 이제 침몰되어가는 중이다.

 이런 얘기를 써봐야지 하고 앉았는데,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피눈물나는 농성장에 용역깡패들과 경찰이 난입했다는 속보가 전해져 왔다. 아, 이번엔 기륭인가. 여기서 다시 세월호를 만들어보고 싶으냐고 울부짖는 조합원들과 함께 여기서만은 그 어떤 인간적인 것도 빼앗기면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싸웠다.
 
 오늘의 전적은 찢어진 단벌 여름 재킷과 부러져버린 지팡이 하나, 결린 옆구리였지만, 우린 수장당하지 않겠다고, 가만히 있으라는 너희들의 말을 믿다 죽진 않겠다고 싸운 사람들의 힘으로 간신히 공동체에 전해질 또 하나의 절망적인 소식을 막을 수 있었다.
 벗인 정혜윤이 1년여를 눈물 흘리며 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르포집 <그의 슬픔과 기쁨>의 북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대법원 앞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24시간 무기한 1인시위에 들어가 있던 날이다. 지난 17일, 18일 이런 정부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나섰다가 연행되어 풀려난 245명의 사람들이 대한문 앞에 모여 오는 24일에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자신과 1% 자본가들의 무한안전만을 지키며 사는 청와대를 향해 가자는 약속을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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