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터지고 9.28 수복으로 서울을 탈환했던 1950년 내 나이 스물 셋이었습니다. 10월 초순에 10톤짜리 경찰경비정을 얻어 타고 인천을 향해 부산항을 떠나던 날, 날씨는 쾌청했고 떠나는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쳤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서해의 어느 공해에서 모진 풍랑과 폭우를 만나 그 경비정을 타고 서울로 가던 승객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오늘도 이렇게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그 동안 한 일이 없어요. 죽을 뻔 했던 그 날이 그 해 10월 5일 아니면 6일이었을 텐데, 오늘까지만 64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허송한 셈입니다.
공연한 겸사가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성삼문을 한강변에서 거열당할 때 38세였고, 안중근이 여순 감옥에서 처형될 때, 31세였고, 윤봉길이 일본 가네자와 형무소에서 총살당할 때 24세였습니다.
통일을 위해 나는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생각할수록 한심한 삶이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된 뒤에는 ‘친북‧종북’이 진보‧혁신으로 둔갑하였고 해방 이후 줄곧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해온 사람들은 모두 ‘보수‧반동’으로 몰려 뒷전에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존재할 수도 없는 좌우익의 대립은 한국 정치를 혼란으로 몰고 가 오늘의 우리 사회를 요 꼴로 만들었고, 김정은의 핵 위협 앞에서 덜덜 떠는 한심한 신세가 되었고, 통일은 꿈도 못 꾸게 되었습니다.
나는 통일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습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가지고 한 번 실수를 하지 않고는 통일이 불가능합니다. 통일은 내가 먼저 죽기를 결심하기 않고는 안 됩니다.
늙은이들이 일선에 집결돼야 합니다. 그들이 먼저 죽어야 뒤에서 젊은이들이 통일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 기회가 올 것 갔습니다. 아니, 오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죽을 결심을 하기만 하면 통일은 됩니다. 통일은 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