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던 해 내 나이 열여덟이었습니다. 소련군이 지키던 38선을 넘어 월남하던 그 여름밤이 어제만 같은데 벌써 69년 전의 옛날이 되었습니다. 세월이란 이렇게 빠른 것인가, 가끔 놀라기도 합니다.
6.25 전쟁이 터지던 날 새벽 은은히 들려오던 인민군의 대포소리가 점점 요란해지고, 한강 철교가 폭파되던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던 3일 뒤의 새벽도 어제만 같은데, 그것이 65년 전의 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 김동길 박사 |
새삼 Charles Lamb의 ‘Old Familiar Faces’를 되새기게 됩니다. “다들 가버렸네, 절친했던 옛날의 그 얼굴들!” 월파 김상용이 “오고 가고 나그네 일이오. 그대완 잠시 동행이 되고”라고 읊은 그 심정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인수가 부른 유행가의 일절이 생각납니다. “무엇이 사랑이고 청춘이던가. 모두가 흘러가면 덧없건마는” 낭비된 나의 청춘이 아쉽게 느껴지긴 하지만 되돌려달라고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추억도 점점 희미해질 뿐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합니다. “떠날 준비는 되어있는가?”고. 몸도 마음도 점점 기운이 떨어지는데, ‘노익장(老益壯)’을 운운하는 사람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열심히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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