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속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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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속의 공동체
  • 여상환 국제경영연구원 원장
  • 승인 2016.04.22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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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엽 이후 널리 퍼졌던 향약도 우리 민족의 공동존재에 대한 강한 운명의식을 보여준다.
 최민홍 교수의「한철학」에도 나와 있듯이 향약에는 마을 사람들이 뜻밖의 화재나 수재를 당했을 때, 도둑이 들어 재물의 손실을 보았을 때, 질병이나 초상을 당했을 때, 생활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 있을 때, 남의 무고를 입어 억울한 입장에 놓인 사람이 있을 때 온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도와주는 정신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들이 교황청에 보낸 한 보고서에도 ‘조선 사람들은 힘으로 뭉치면 약하지만, 정으로 뭉치면 로마 병사보다 강하다’라는 기록이 있듯이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마음으로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서로 나서서 도왔던 환난상휼(患難相恤)의 민족성, 네일, 내일 가리지 않고 함께 하는 한 울타리안의 ‘우리’라는 상호 공존의식은 우리 민족의 삶의 뿌리를 깊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 필자 여상환 국제경영연구원 원장
 두레와 같이 형성된 협동조직이 아니더라도 농업용수를 대기위한 물꼬트기, 홍수를 피하기 위해 방죽을 쌓는 일, 길을 닦는 일 등 다른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진하고 끈끈한 이 협조정신은 이기심 없는 신바람의 마당 속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었다.

 신바람 속에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절묘한 협동작업이 있다. 바로 세 사람 또는 여섯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이 하듯이 호흡을 맞춰 하는 가래질이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흙을 파서 옮길 때 작은 일에는 호미나 괭이, 삽을 쓰고 큰 일에는 가래를 써왔다.

 이 가래에는 세 사람이 붙어 일하는 외가래와 여섯 사람이 함께 일하는 육목가래가 있다. 외가래는 두 사람이 가래에 달린 끈을 당기고 장부되는 사람이 가래자루를 잡고 동작을 맞춰야 되고 육목가래는 작은 가래를 나란히 두 개를 붙인 것으로 네 사람이 가래줄을 당기고 두 장부가 가래자루를 잡고 동시에 움직여야 흙을 파서 던질 수 있다. 육목가래는 그만큼 흙이 멀리 던져지기 때문에 큰 공사때 사용되었다.

 독일의 안드레 에칼트(Andre Eckardt)는 그가 쓴「한국 체험기」에서 유럽 사람들은 흙공사를 할 때 혼자서 삽질을 하는데 비해 한국 사람들이 한 사람이 삽을 잡고 두 사람은 각기 거기에 달린 끈을 잡아당기면서 일하는 것을 보고 한국 사람들의 협동심을 높이 찬양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외가래나 육목가래나 모두 듣는 사람도 흥겨운 가래질소리와 가랫 장구를 해가며 그 장단에 맞춰 힘든 일을 재미있고 쉽게 해냈다. 먼저 한 사람이 가래를 잡고 흙을 뜨면서 선창을 하면 나머지 몇 사람이 같이 당기면서 후창을 한다. 되풀이되는 그 가락에 맞춰 몇 사람이 하나처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속도가 차츰 빨라지는데도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일이 척척 진행된다.

 이 가래질은 절묘한 삼박자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호흡을 맞추지 못하면 흙이 제대로 떠지질 않는다. 어떤 규정이나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움직임을 내 움직임처럼 감각적으로 느끼고 호흡을 맞출 줄 알아야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잡아당기고 떠미는 힘과 방향이 서로 다르면 이 삼각형의 역학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분업이 아닌 마음과 몸이 한덩어리를 이루어야만 가능한 오묘한 한국적 협동의 특징이 내재되어 있는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어쩌면 대립된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일과 놀이를 가락과 몸짓을 통해 일어나는 신바람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하고 있다.

 고대 제천의식에서 형성된 신바람이 저변에 흐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은 신명이 나야 모든 일에서 서양의 분업주의, 합리주의가 따라갈 수 없는 초인적인 능률을 발휘한다. 이 신바람에 휩싸이면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는 소아적인 틀에서 벗어나 보다 큰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 기꺼이 힘을 다하는 커다란 자아가 나타난다.
 생활공동체로 묶여진 여러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고 호흡을 맞추면 저절로 신이 나고 거기다 풍악소리라도 곁들여지면 흥은 고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과 놀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신바람 나는 삶의 장면이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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