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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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처럼 무서운 건 없다
  • 김동길
  • 승인 2016.06.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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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에 접어들었으니 올해도 반은 갔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반년을 더 살면 나도 90의 고개를 넘는 한 노인이 되는 것인데,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모두 합하면 족히 10억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많을 지도 모르지요.)

 그 많은 조상들 가운데서 90이 되도록 살아본 사람은 내가 처음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어느 한 분도 80이 넘기까지 살아보신 어른이 안 계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겁니다.
 10억 조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처음 그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라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 김동길 박사
 “해가 길어도 이렇게 길 수가 있을까?” 요 며칠 사이의 소박한 느낌입니다. 이제 ‘하지’(6월 21일)가 되기까지 해는 날마다 길어질 터인데 막상 그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 다음 날부터는 해가 짧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농사짓던 조상들에게서 나도 모르게 물려받은 타고난 근심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해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면 생존 자체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동지’(12월 21일)날이 오면 하루하루 해가 길어지는 그 재미에 사는 게 또한 인간이라는 동물입니다.
 해가 길어지는 그 기쁨마저 없다면 무엇을 믿고 그 추운 겨울을 참고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라고 노래한 Shelley를 우리는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겨울은 새 봄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추워도 참고 견디면 따뜻한 봄날은 찾아옵니다.

 사람이란 어느 나이가 되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세월의 속도는 물론 가속도도 느끼게 마련입니다. “세월 아, 네월아, 맘대로 가라!”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포자기 하는 마음의 자세로 세월을 보냅니다. 세월 때문에 나만 쪼그라집니까? Richard Burton도 Elizabeth Taylor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나만 두고 그 잘생겼던 두 분은 다 갔으니 “소식조차 막연해 물거품이라”고 한 ‘허사가’의 일절이 생각납니다.

 세월이란 이렇듯 무서운 건데 제발 큰소리치지 마세요. 남부끄럽지 않습니까? 뭘 잘났다고! 고개를 숙이고 하짓날을 맞으세요. 그리고 그 날 기도하세요. “동짓날까지는 탈 없이 살게 해주세요”라고. 허망한 꿈은 버리세요. 그리고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공손한 마음으로 노래하세요.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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