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해 간호사의 ‘태움’ 문화가 조명받고 있다. 해당 병원은 일차 조사결과 태움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온라인상 태움에 대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19일 경찰과 해당 병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서울의 한 대형병원 내과계 중환자실 간호사는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A씨의 남자친구는 18일 오전 12시4분 온라인상 익명 게시판을 통해 “여자친구의 죽음은 그저 개인적인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간호부 윗선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고 밝혔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가리키는 말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보통 신입 간호사(프리셉티)는 3개월 정도 업무가 익숙해질 때까지 경력간호사(프리셉터)가 따라다니면서 교육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프리셉터가 프리셉티를 상대로 폭언, 폭행, 따돌림 등 태움을 일삼는 일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다른 지인은 온라인상에서 "프리셉터는 A씨에게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실수를 크게 지적하는 등 교묘하고 집요하게 태움을 지속했다”라며 "그는 6개월간 이런 방식의 태움을 견디다 못해 그만두기로 상담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A씨는 13일 환자의 배액관(수술 후 상처의 분비물을 제거하기 위해 배에 연결하는 가느다란 관) 연결을 실수해 재시술하는 일이 있었다. 지인은 “A씨는 실수 후에 의료소송 피해사례를 끊임없이 검색하면서 고통스러워했다”라며 “소송 사례를 찾아본 다음 투신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의 메모에 프리셉터의 눈초리와 수면 부족, 끼니 거름 등으로 힘들다는 글을 쓰다가 완성하지 못했다”고 했다.
병원 부고에 A씨 본인상이 뜨자 해당 병원 간호부원장을 비롯해서 인사 담당자, 간호팀장 등 병원 경영진 10명이 A씨의 조문을 간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측은 두 가지 사실 확인을 강조했다. 명절 연휴인 관계로 전수조사가 아닌 일차조사가 이뤄진 가운데, 프리셉터와 팀장으로부터 태움은 없었다고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의 일차 조사 결과 태움으로 불리는 특별한 괴롭힘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실은 A씨가 배액관 관련 실수로 매우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당시 배액관 라인은 환자의 체위를 변경하다가 빠졌고, 곧바로 환자에게 재시술이 이뤄졌다. 병원 관계자는 “A씨는 자신의 실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라며 “그는 14일 저녁 수간호사에게 면담 요청을 했고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그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해(危害)를 끼친 것은 아니었고, A씨에게도 문제를 삼진 않았다”라며 “의료 과실이 생기면 개인 책임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보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병원 측은 연휴가 끝난 19일부터 전수조사를 실시해 자살 사유에 대해 다각도로 확인할 방침이다. 또한 프리셉터와 프리셉티로 이어지는 교육시스템에 대해 종합적인 점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한편, A씨의 남자친구의 글에는 3만3000여명이 공감했고 2600여명이 공유했다. 글이 올라온지 하루가 지난 이후에도 태움과 관련한 간호사들의 경험담이 공유되면서 '이번 기회에 태움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