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본격 착수한 지 7개월 만인 18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검찰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이르면 다음 주 초 이뤄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재판개입·법관사찰 등 혐의(직권남용 등)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 소환한 지 일주일 만이다.
검찰은 지난 11·14·15일 3차례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에서 위법성이 가장 중대하고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진 일제 강제징용 소송과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에 직접 연루돼 있다. “부하들이 알아서 한 일”이라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진술과 달리 검찰은 그를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옛 통합진보당 지역·국회의원 관련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기밀 불법 수집,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유용,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은폐·축소 등 의혹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향후 검찰과의 ‘법정 정면 승부’를 예고했다. 그는 피의자 신문 조서를 숙독하며 향후 있을 영장심사와 재판 절차를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문 조서 열람에 쏟은 시간은 꼬박 36시간30분으로 조사에 걸린 27시간보다 9시간30분 더 길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2일과 17일은 별도 조사 없이 조서 열람만을 위해 검찰에 출석해 각각 10시간, 14시간 동안 조서를 빈틈없이 살펴봤다. 당초 마지막 조서 열람이 예정됐던 지난 16일에는 변호인 2명 중 1명이 지방 재판 일정이 있다며 일정을 하루 연기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양 전 대법원장 측의 ‘마라톤 조서 열람’에 대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뭐라 할 순 없지만 보기 드문 경우인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범죄사실)는 40여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판(재상고심)을 ‘박근혜 청와대’ 요청에 따라 지연되도록 하고,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해 전범기업 쪽 손을 들어주려 한 혐의가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전범기업 쪽 대리인을 직접 만나 전합 회부 계획을 전달하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소송 서류를 감수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2∼17년 자신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해 행정처에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라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토록 해 실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불이익 방안에 브이(V) 표시를 하는 등 직접 결재하고 서명했다는 것이 그간 검찰 조사 결과다.
이 밖에도 양 전 대법원장은 ▲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 전국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등 각종 의혹에 대부분 연루돼 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일반적인 미체포 피의자 심사 일정에 준해 오는 22일께 열릴 전망이다. 다만 범죄 혐의와 수사기록이 방대한 점을 감안해 하루이틀 늦게 기일이 지정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