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307호 성주사지에 대한 7차 발굴조사가 지난해 12월 마무리됐다.
1962년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가 국보 8호로 지정된 이후 성주사지는 1968년과 74년, 2회에 걸친 동국대박물관의 첫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91년 7월부터 96년 5월까지 6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충남대 박물관이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충남대 조사단은 성주사의 전신이 백제시대 호국사찰인 ’오합사‘인가 하는 점과 통일신라시대 대성주사 창건과 관계된 가람배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발굴을 시작해 성주사지에서 백제시대 유구를 확인하고 성주사의 전신이 오합사라는 학계주장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하는 큰 성과를 거둔바 있다.
성주사의 전신인 백제 오합사는 전쟁으로 인해 숨진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창건된 호국사찰로 신라의 삼국통일 후에도 오합사를 중심으로 백제의 혼을 이으려는 지역민들의 정신적 중심체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성주사지에는 국보 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를 비롯해 여러 보물과 문화재가 현존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관리와 보존 대책은 미흡한 상황이다.
성주사 창건기인 9세기 경 조성된 보물 제20호인 성주사지중앙3층석탑의 경우 1999년, 초층탑신 모서리 부분의 균열을 인공수지로 접착보수하고, 약품을 이용 곰팡이와 지의류 제거작업을 실시해 지금의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선진국을 지향하는 선진각국의 경우 문화재 보수기법과 약품에 대한 연구개발 노력은 우리와 많은 차이를 보이는 상황이다.
문화선진국의 경우 성급한 보수보다는 문화재에 최대한 손상이 덜 가는 방법을 연구하며 장시간의 고민과 노력을 쏟아 붓는 것과 비교할 때 보물 제47호인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 탑신의 보수상황과, 강당지 한편에 위치하며 ‘석불의 코 부분을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퍼지며 훼손돼 현재 시멘트로 때워져 있는 석불입상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크게 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