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경 작가 ‘초록 서정’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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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 작가 ‘초록 서정’ 개인전
  • 이예원 문화부장
  • 승인 2020.05.21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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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5.20 ~ 6 .14
갤러리가이아, 서울(인사동) -
이해경 초록서정 Green Feeling 80x180cm mixed media on Korean paper 2020
이해경 초록서정 Green Feeling 80x180cm mixed media on Korean paper 2020

 초대의 글

 한국 채색화의 전통 위에서 구축한 자신만의 회화적 조형언어로 < 초록 서정 >이라는 일련의 서사적 표정을 통해 삶의 내재적 담론을 꾸준히 전개해 온 이해경 작가의 8년만의 개인전이 갤러리 가이아에서 개최됩니다.

 '초록 서정'이라는 그 제목이 암시하듯 그녀의 그림은 고요하고 서정적이며 내면적입니다. 질감이 도드라진 석채와 분채를 혼용해 자신의 삶의 일상을 기록하듯 꼼꼼하게 그려나간 붓의 흔적이, 지난하고 인내심 배인 그리기의 흔적이 화면에 가득합니다.

 작품을 마무리하기까지 긴 시간 동안 그녀의 내면에서 부침하고 섞이고 뒤엉키던 혼란한 갖가지 사변의 흔적들은 세심한 그녀의 붓끝에서 수렴되고 다스려져 한고비를 지나온 여행자의 여정처럼 잔잔하게 서술되고 있습니다.

 푸른 수풀을 배경으로 갖가지 야생화들과 곤충들 새들이 화면에 고르게 펼쳐져있고, 꽃들은 이제 막 피어난 듯 싱그럽고, 다양한 꽃송이들 사이의 공간은 평온하고 고요합니다.

 작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조심스럽지만, 그림에서는 제 소리로 울려 나오는 회화적 목소리가 다채롭고 의미롭습니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가의 전시에 함께 해주시기를 바라며 여러분을 기쁜 마음으로 초대합니다.

           2020년 5월
   갤러리가이아 윤여선 대표 드림

이해경 초록서정 Green Feeling 162x130cm mixed media on Korean paper 2020
이해경 초록서정 Green Feeling 162x130cm mixed media on Korean paper 2020

 ‘초록 서정’, 그 삶의 불가능성의 가능성

 문태현.ph.D(TAM 대표)

 낯익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낯선 그 무엇이 존재한다. 삶 속에, 그 삶의 주체인 우리 자신 속에. 그러나 그 무엇을 소리 내어 크게 말할 수는 없다. 말하려는 순간, 그것은 희미해지고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화법은 독백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나직이 말하기, 혹은 중얼거림. 자신에 대한 독백은 소심하고 모호하고 비논리적이며 자아 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발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정언적 명령 때문이다. 글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그렇게 할 수밖에 달리 탈출구가 없게 만드는 명령, 불온한 초자아적 명령, 내적 울림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스스로 발화를 통해 주체화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체성은 불안하고 나르시시즘적이며 쉽게 부서진다. 그들은 인화성 강하고 비선형적이며 심리적으로 아나키스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용하고 수줍기조차 하다.

이해경 작가
이해경 작가

 '초록 서정'이라는 그 제목이 암시하듯 그녀의 그림은 고요하고 서정적이며 내면적이다. 질감이 도드라진 석채와 분채를 혼용해 자신의 삶의 일상을 기록하듯 꼼꼼하게 그려나간 붓의 흔적이, 지난 하고 인내심 베인 그리기의 흔적이 화면에 가득하다. 작품을 마무리하기까지 긴 시간 동안 그녀의 내면에서 부침하고 섞이고 뒤엉키던 혼란한 갖가지 사변의 흔적들은 세심한 그녀의 붓끝에서 수렴되고 다스려져 한고비를 지나온 여행자의 여정처럼 잔잔하게 서술되고 있다.

 푸른 수풀을 배경으로 갖가지 야생화들과 곤충들 새들이 각자 동등한 역할을 부여받은 듯 화면에 고르게 펼쳐져 있다. 꽃들은 이제 막 피어난 듯 싱그럽고, 다양한 꽃송이들 사이의 공간은 평온하고 고요하다. 그 정적인 공간에 새들과 곤충들이 불쑥 출현하기도 하는데, 그들 관계의 어떤 위협이나 위기감도 없이 삶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듯 서사적이다. 가끔 수풀 뒤로 예기치 못한 푸른 풀밭이 펼쳐지거나 화면 위쪽으로 흰 구름 몇 조각 머금은 푸른 하늘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아직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은 어떤 전경의 존재를, 그 삶의 심리적 확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멀리에서 보면 삶은 그렇게 고요하고 탈중심적이고 탈중력적인 서정성을 지니고 있다. 조용하게 펼쳐지듯 흘러가는, 굴곡진 서사를 감춘 밤의 어둠처럼. 그러나 수풀을 헤치고 천천히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고르게 펼쳐진 듯 보이던 풀꽃 흐드러진 전경 속에서 예기치 않은 숨겨진 내부 공간이 드러난다.

 그 공간은 구성적 공간이라기보다 단색조의 초록의 농담 속에 스미고 감춰진 심리적 공간으로서,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독백을 허용하고 귀 기울이는 사유적 공간임과 동시에 풀꽃 어우러진 전경 너머의 서술되지 않는 어떤 함의를 암시하는 은유적 공간이다. 감춰져 있지만 드러나기를, 그리고 텍스트로 읽히기를 욕망하는 공간이다.

이해경_초록서정_175x137cm_mixed media on koream paper_2016
이해경_초록서정_175x137cm_mixed media on koream paper_2016

 정교하고 세밀한 붓질을 반복함으로써 화면 위에 천천히 색의 농담을 새겨가는 그녀의 그리기의 방식은 옛날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전통적인 손 수놓기의 방식과 그것이 암시하는 사회 심리학적 함의를 연상시킨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삶의 양식과 속성이 제한받던 남성 위주의 폐쇄적 사회에서 여성의 수놓기는 외견상 단순한 소일거리를 넘어선 일종의 사유행위였다.

 바늘로 한 땀 한 땀 면을 이루고 색을 올리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과정 그 자체가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자문하는 자아 성찰적 과정이며, 수놓기를 통해 드러내는 내면의 표상은 그 내용이 비록 제한적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에 대한 적극적인 외면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폐쇄적 사회에서의 여성의 수놓기는 입으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몸으로 말하기의 한 전형을 이루며, 그 사회에서 규정지어진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저항이라는 사회심리학적 담론을 내포한다.

 현대 사회는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종의 하부에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지닌 젠더를 허용하고 병치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함의 속에서도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은 단지 다양한 젠더 중 하나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삶의 속성적 존재가 아닌 사회의 양태적 존재로 일반화되고 합리화되면서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은 유전되는 삶의 형식 속에서 다시 폐쇄된다. 삶은 유전하고 그 주체는 환원된다.

 수놓기는 그리기로 대체되며, 그녀는 그리기라는 사유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삶의 등가적 의미를 현재의 삶의 함의 속으로 수렴한다. 외적 형태의 유사성이 그 내면의 심리적 동일성까지 담보하지는 않지만, 더없이 반복적이고 한없이 느리게 번지듯 그려가는 그녀의 그리기의 방식은 그녀만의 끊임없는 삶의 노동 양식이자 그 노동을 통한 적극적인 삶의 사유행위의 한 형태이다.
 몸으로서의 노동이 사유의 양식이 될 때, 그것은 입이 있지만 입으로는 말해질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몸으로 말하기이다. 그래서 한없이 더디고 느린 그녀의 그리기의 속도는 그녀의 작업 속도라기보다는 여성으로서 사회의 양태적 존재로부터 속성적 존재로 탈중심화하는 일련의 내면적 저항으로 읽힌다.

 그녀는 여성의 속성 중의 하나인, 입으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몸으로 말하기의 오랜 기억을 그녀의 그리기에서 되살려낸다. 짧고 반복적인 고요한 붓질이 이끄는 삶에 대한 사유와 자문자답하는 조용하고 끊임없는 자아의 독백. ‘나’라는 주체로의 회귀. 그러나 그 부재가 던지는 어둡고 불안한 서정. 탈중심적이고 탈중력적인 단색조의 '초록 서정'은 비로소 그 내면에 깊이 감췄던 심리적 표정을, 그녀가 표상하고자 하는 정초적 삶의 정서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듯 야생화가 만발하고 곤충과 새들이 어우러진 '초록 서정'은 일종의 의도된 환상인 것이다. 뭔가 감춰진 이면 또는 내면을 가장한 발화하기 위한 환상. 환상은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 실재를 드러내기 위한 고안된 실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드러내고자 하는 실재는 일종의 사물처럼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환상과 연결된 일종의 망적 구조를 지니며, 따라서 환상을 제거한다고 해서 그 실재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환상이 제거될 때 드러나는 것은 기이한 왜상과 혼돈이다.

 역설적으로 '초록 서정'이 그토록 몸으로 말하기의 형식과 속성을 지니는 이유이며, 또한 지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삶은 속성적이면서 동시에 양태적인 변증법적 구조를 지니기 때문에 삶의 실재는 드러낼 수도 드러날 수도 없는 부재적 양상을 보인다.
 그러므로 실재를 가장한 연극이나 혹은 환상을 통해 보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그 무엇인 것이다. 문득 느끼지만 붙잡지 못하고 놓치는 그 무엇, 실존적이면서도 개량 불가능한 어떤 증거, 혹은 환상에 기대어 가까스로 보게 되는 부재하는 실재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그림의 모티브로 삼는 ‘초록 서정’이라는 언어적 수사는 사전에는 그 뜻이 존재하지 않는, 그녀 자신이 스스로 선언한 파롤이고 이데아이며 텍스트이다. '텍스트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데리다(Derrida)의 말처럼 ‘초록 서정’은 다의적이고 다층적인 의미의 독해의 그 불가능성으로 인해 그 의미는 끊임없이 미분화된 상태를 지향하는 그녀 자신의 독백이며, 그녀가 선언하는 삶의 기표이자 기의 이고, 그녀 자신을 주체화시키는 수단이면서 목적이다.
 그렇다고 ‘초록 서정’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르면 도래하게 될, 그녀가 기다리는 메시아적인 어떤 삶을 지시하거나 의미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초록 서정’의 내부에 존재하는 텍스트의 끊임없는 그 미분해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실패하는, 그래서 결코 도래하지 않을, 그러므로 그녀 자신의 정언적 명령에 의해 표상되고 선언되어야 하는 삶의 불가능성의 가능성인 것이다.

 그녀의 '초록 서정'은 여성의 속성에 깃들어 있는 ‘몸으로 말하기’라는 오랜 방식을 통해 그 삶의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표상하는 그녀의 회화적 메타언어이다. 언어는 거짓을 허용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언어가 지닌 그 허구성이야말로 언어가 어떤 의미를 실어 나르는 수레로 기능하게 하며, 언어가 지닌 의미의 그 불가능성의 가능성은 예술가들을 유혹하고 사로잡는 또 하나의 환상인 것이다.
 그녀는 ‘초록 서정’이라는 외견상 지극히 평면적이고 단색조의 회화적 언표 속에서 그 ‘삶의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심리적 표정을 드러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