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위해, 한글의 힘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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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위해, 한글의 힘을 키우자
  • 이항영 편집국장 겸 취재부장
  • 승인 2020.10.12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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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전체가 하나의 운명공동체임이 뚜렷해 가는 21세기에 한국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 속에 놓여 있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통해 국가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으며, 이른바 한류를 통해 문화 발신자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문화 발신자임을 증명한 한류의 세계화는 한국인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 2천여 년 동안 한반도는 중국, 일본, 유럽, 미국 등에서 발신하는 학문과 문화의 수신자 역할만 했다.
 이제 한국인이 만든 첨단 제품을 세계로 수출하고, 한류 문화가 세계인의 호응을 받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글의 위상도 높아졌다.

 훈민정음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과학적 원리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임금이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의아해하며 믿지 못하겠다는 외국 학자도 있다.
 하지만 한글이 비록 뛰어난 문자라 해도 이 문자를 세계인이 필요하도록 만들어야 그 가치를 세계인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 한글이 아무리 훌륭한들 그네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면 한글의 가치는 제몫을 다 할 수 없다. 외국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따라 하려고 한글을 배우듯이 한글을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필자: 백두현 교수 (경북대 인문대 국어국문)
필자: 백두현 교수 (경북대 인문대 국어국문)

 외국인에게 한글이 필요하도록 만들려면 먼저 한국과 한국어의 힘을 키워야 한다. 한국의 경제력을 키우고, 한국어로 표현되는 예술과 문화의 힘을 키워야 한다. 더 나아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한국인이 기여해야 한다.
 이 과업이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정과 평등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의 가치관을 세계인과 공유하려는 노력도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경제의 힘과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인류 보편적 가치의 구현으로 나아가는 한국인,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부여된 세계적 과업이다.

 경제의 힘을 키우는 방안은 내가 말할 바가 아니다. 문화의 힘을 키우는 방안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문화를 형성하고 표현하는 매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와 문자이다. 한국인이 창조하는 문화는 한국어와 한글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많다. 그래서 한국 문화의 힘을 키우는 것은 한국어와 한글의 힘을 키우는 일이 된다. 한국 문화와 학문의 발전은 물론 세계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국어와 한글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이 과업을 실천하는 길은 한국어의 네 가지 기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상어 기능, 언론과 방송·각종 국가 기관 등 공적 차원에서 쓰이는 공공어 기능, 시와 소설 등 예술 장르에서 쓰이는 문학어 기능,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학술어 기능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를 성숙시키는 것이 한국어의 힘을 키우는 길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는 적절한 한국어 정책을 세워 실천해야 하고, 각급 공공 기관과 개인은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 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현실 속에서 한국어의 발전을 방해하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일반 대중들은 일상생활에서 외국어와 영문자를 무분별하게 쓴다. 아파트 이름은 뜻을 알기 어려운 외국어로 다 짓는다. 시민과 친숙해야 할 공공 기관 이름은 한국어 명칭을 아예 폐기하고 영어식 명칭만 쓴다. 국가 기관들은 각종 정책 이름을 영어로 만들기 일쑤다.
 지방자치단체가 내세운 이른바 ‘지역 브랜드 슬로건’은 영어 남용의 전형적 사례이다. 이상한 영문으로 만든 슬로건의 뜻이 무엇인지 지역 주민부터 이해하기 어렵다. 이래서 남해군의 ‘사랑해요 보물섬’이 더 호평을 받았던 것이다.

 한국어를 학술어로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학술어 기능은 공공어 및 문화어 기능을 뒷받침하는 샘물과 같다. 강으로 치면 학술어 기능은 최상류 발원지다. 학술어 기능을 못하는 언어는 다른 용도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대학 교육에서 영어강의를 권장하거나 학위 논문의 영문 작성을 의무화하는 것은 한국어가 학술어로 발전하는 길을 막아 버린다. “영어강의는 자생적으로 필요할 때 교수의 재량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억지로 하는 영어강의는 강의의 질을 떨어뜨리고 우리 학문의 뿌리를 훼손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려대 이철호 명예교수). 오랫동안 영어강의를 실천해 온 원로 학자의 말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어와 한글이 학문적 기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이다. 이제 75년, 이 짧은 기간 동안 한국어와 한글은 괄목 성장하여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가 되어 왔다. 한글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된 지 100년이 채 안 된 오늘날, 한글은 무분별한 영어 사용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직시하고, 한국어와 한글의 힘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의 목표는 한글의 가치를 세계인과 공유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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