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절로 정의로워지지 않는다
상태바
법은 절로 정의로워지지 않는다
  • 김정심 서울본부 사회부차장
  • 승인 2023.03.07 1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반적으로 법은 정의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한자에서 법(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水)이 흘러가는(去) 모습처럼 순리적인 것 또는 결국에는 낮은 곳에 모여 수평을 이루는 모습처럼 공평한 것을 의미한다.
 많은 서구어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들 언어에서 법은 올바름이나 정당함을 뜻하는 어휘와 동일하다. Recht(독일), droit(프랑스), diritto(이태리), derecho(스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법과 정의의 내적 연관을 시사한다. 이 속에서 정의는 법의 본성으로 사고된다.

 다른 한편, 우리는 의회가 제정한 규범을 법으로 부른다. 이 때 법은 의회가 입법절차에 따라 가결하고 대통령이 공포한 규범이다. 여기서 법은 일정한 형식적 절차를 준수할 때 성립한다. 그것이 내용적으로 정의로운지 여부는 결정적인 기준이 아니다.

필자: 이황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 이황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제는, 이 둘 즉 내용(정의로움)과 형식(절차준수)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형식적으로는 정당하나 내용적으로는 부당한 법’의 문제는, 고대 그리스의 희곡 <안티고네>에서 극적으로 표현된 이래 법학의 오랜 난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법은 그것을 준수하면 부당함을, 그것을 위반하면 위법함을 낳는다는 딜레마를 초래한다. 현대 정치에서는, 타당한 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능력, 인격을 갖춘 입법자를 선출함으로써 이 난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입법자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당한 법을 만들 경우 국민은 위의 딜레마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오늘날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동원된다. 

 첫째는 여론이다. 민주국가에서 입법은 의회의 몫이지만, 한 사회의 입법이 오롯이 의회만의 성취일 수는 없다. 법의 궁극적인 작성자는 국민이기 때문이다. 입법권이 대표에게 위임되어 있더라도,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표를 심판한다는 서사는 대표가 국민의 의사에 반응하고 그것을 존중하게끔 강제한다.
 여론은 따라서 국민이 법의 문제를 감지하고, 쟁점화하고, 해결방향을 의회에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여론의 압력이 의회로 하여금 부당한 법을 교정하게 만들 수 있는 이유이다.

 둘째는 헌법재판이다. 헌법은 그 사회의 근본적인 규범으로서 다른 법보다 우월한 효력을 가지므로, 법은 헌법에 담긴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념을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무효가 되는데, 그렇게 만드는 법적 수단이 헌법재판이다. 헌법의 고차적 효력에 기하여 법의 정의로움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방식은 일정한 제한된 조건(적법요건 충족 등) 속에서만 작동하므로 활용성에 제약이 있고, 위헌 여부의 관점으로만 심사하므로 합헌의 범위 내에서 경합하는 타당성 주장 간의 우열을 판별해 낼 수는 없다는 한계도 있다.

 이상의 방식은 공히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동력으로 삼는다. 좋은 입법자를 선별하는 것, 입법이 정의로운 내용을 갖도록 영향을 끼치는 것, 헌법재판을 통해 위헌인 법을 없애는 것은 모두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갈망하는 국민의 참여적인 노력과 실천의 소산이다.
 의회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의회라는 형식이 법의 정의로움을 보증하지 않는다. 좋은 법에 의해 통치되기를 원하는 국민의 노력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출처 : 성대신문(http://www.skkuw.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사무소 : 02-833-7676  FAX: 834-7677
  • 세종.대전. 충청지역본부: 044-866-7677
  • 부산.경남지역본부: 051-518-7677
  • 경기지역본부 : 031-492-8117
  • 광주.호남지역본부 : 062-956-7477
  • 본사 : 대구광역시 수성구 국채보상로200길 32-4 (만촌동)
  • 053-746-3223, 283-3223, 213-3223.
  • FAX : 053-746-3224, 283-3224.
  • 신문등록번호 : 대구 아 00028
  • 등록일 : 2009-07-29
  • 사업자번호 502-27-14050
  • 발행인 : 李恒英
  • 편집인 : 李日星
  • 독자제보. 민원 010-2010-7732, 010-6383-7701
  • 이메일 sunstale@hanmai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예원 부장
  • Copyright © 2024 썬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unsta@sunnews.co.kr
  • 인신위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