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의 바다' :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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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의 바다' :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출간
  • 김선형 편집기자
  • 승인 2023.10.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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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 어비나 지음 ; 박희원 옮김. 발행사항 고양 : AGORA(아고라), 2023 -
'무법의 바다' 책표지
'무법의 바다' 책표지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 기자,
  이언 어비나의 바다 사회사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 길들여지지 않은 최후의 프런티어이자 인류 생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바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바다에서 100마일 이내에 살고, 5천만 명 이상이 바다에서 일하며,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의 절반을 생산하는 바다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에도, 바다에 대해 아는 것은 충격적일 정도로 적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탐사보도 기자인 이언 어비나가 쓴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아름다운 동경의 대상일 뿐인 바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언 어비나는 인류학과 역사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해양 조사선의 인류학자로 일할 기회를 갖게 되고, 그때 만난 뱃사람들을 통해 바다 위 세계에 사로잡혔다.
 그후 《뉴욕타임스》 기자가 된 그는 「무법의 바다」 시리즈를 통해 바다에서 벌어지는 때로는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참혹한 이야기들을 펼쳐냈으며, 《뉴욕타임스》 커버스토리로 수록됐던 글들과 이 책만을 위해 새로 씌어진 글들이 더해져 이 책 『무법의 바다』가 완성되었다.
 비행기 85대를 타고 전 대륙의 도시 40곳을 누빈 40만 4,000킬로미터의 취재와 오대양과 다른 부속해 20곳을 넘나든 1만 2,000해리의 여정을 통해 탄생한 이 책은, 물리적·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어떤 책도 종합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바다’에 대해 쓴 대담하고 깊이 있는 르포르타주다.

  '물고기가 아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라.
  그 렌즈 너머로 환경과 인권, 노동 문제가 모두 보일 테니.'


 열다섯 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여행기처럼 풀어낸 이 책에는 인신매매업자와 밀수업자, 해적과 용병, 쇠고랑을 찬 노예와 파도에 내던져진 밀항자, 임신중지가 불법인 나라의 여성들을 공해로 데려가는 의사, 배를 훔치는 도둑과 폐유 투기범, 미꾸라지 같은 밀렵꾼과 그들을 쫓는 환경 보호 활동가, 바다가 가장 폭압적인 일터라는 걸 알면서도 그곳에 몸을 팔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삶과 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광대한 무법의 바다에서 펼쳐지는 이 다채로운 이야기들에서는 선인과 악인이 선명하게 나뉘지 않고,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단선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4장 ‘상습 범죄 선단’에는 안전규정 위반과 무리한 조업을 일삼았던 사조오양이 등장하며, 배의 침몰과 선원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이 책은 무능하지만 끝내 배의 키를 놓지 못하고 배와 함께 침몰한 선장, 강간당하고 갈취당하고 익사했으면서도 고발의 목소리를 내길 거부한 선원들, 값싼 노동으로 생산된 참치 통조림을 먹는 우리 중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묻는다. 단지 기업의 잘못을 폭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다층적인 이유와 그런 현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곡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 이언 어비나는 먼바다에서의 목숨을 건 취재를 통해, 우리가 보지 못했고 보려 하지도 않았던 해상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대규모 환경 파괴와 경제 불평등, 무차별적인 해양 동물 살육, 어업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시급한 해양 문제에 대응하지 못하는 각국 정부의 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노동과 환경, 정치와 외교, 주권과 재생산권 담론까지 아우르고 있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자 충격적인 폭로담이기도 한 이 바다 르포르타주는 바다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들로 하여금 바다의 평행 세계, 우리가 사는 육지의 현실까지 성찰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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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 글 중에서
[P. 99~100] 공간 낭비와 다른 값비싼 어획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느러미를 절단하고 남은 상어 몸통을 도로 물속에 던진다. 몸통 고기보다 지느러미가 백 배는 더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죽음은 느리게 진행된다. 살아는 있으나 지느러미가 없어 헤엄을 칠 수 없는 상어는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굶거나 질식해서, 또는 다른 물고기에게 뜯어 먹혀 죽는다.
과학계는 해마다 지느러미 때문에 학살당하는 상어가 9,000만 마리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P. 170~171] 불 보듯 뻔했던 결과를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오양70호는 침몰할 것이었다. 배 전체가 혼돈에 빠졌다. 신씨는 선교에서 초단파 무전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다. 선원들은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구명조끼는 한국인 사관들만 입고 있었다. 오양70호의 구명정이 물에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배 역시 진즉 파도에 전복된 상황이었다.
그날 아침 동트기 전의 수온은 약 섭씨 6.6도였다. 배에는 한기를 차단하도록 제작된 구명슈트가 68벌 있었다. 승선자는 51명이었으니 수량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슈트를 입은 선원은 아무도 없었다. 입는 법을 아는 사람이 있기나 했을지 의문이다.
오양70호를 침몰시킨 것은 물이 아니라 탐욕이었다. 배가 물고기를 과하게 집어삼키려 하자 바다가 역으로 배를 집어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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