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저자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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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저자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
  • 최미영 문화부기자
  • 승인 2023.11.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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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병이나 마음의 병을 기피해온 사회에서
우울증이 폭발하게 된 과정과 이유는 무엇일까?


 2021년 발표된 OECD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우울감 확산 지수는 36.8%로 OECD 주요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가 ‘우울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코로나19, 경기불황, 과로 등으로 우울증이 증가하고 그로 인한 극단적 선택도 늘어가고 있다. 이렇듯 우울증이 일상이 되고, 자살 기사에 무디어져 가는 현재 상황은 비단 우리에게만 닥친 비극일까?

 이 책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는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가 일본에서 우울증이 폭발적으로 급증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심층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1990년대 말 북미 친구들에게 받은 질문, “일본 사람들은 왜 우울증에 걸릴 만큼 일을 하느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25년간 우울증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서구가 아닌 비서구의 사례를 추적하여 우울증의 사회성을 여실히 보여준 이 책은 의료인류학의 명저로 꼽히며 미국인류학회의 ‘프랜시스 수’ 도서상을 수상했고, 2011년 영어 출간 후 일본어, 프랑스어, 페르시아어로 번역되었다.

 저자는 ‘이전에는 흔치 않았던 병이 어떻게 국민병으로 바뀌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울증의 역사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임상 현장으로 들어가 의사와 환자의 상호작용 속에서 ‘우울증 서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인류학자의 시각으로 관찰한다. 나아가 시선을 병원 밖으로 옮겨 과로 우울증을 중심으로 국가 정책과 관련된 제도 변화까지 설명해낸다. 이 책은 우울증이 단지 개인적인 질환이 아니라 제약회사, 행정 관료, 변호사, 노동조합 등 다양한 행위자에 의해 그 의미가 지속적으로 협상되는 사회적인 질환임을 보여준다. 이로써 저자는 신체적 기질, 과로사, 자살, 젠더 문제까지 우울증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룬다.

 ◇ 우울증은 어떻게 ‘국민병’이 되었는가
  - 일본을 통해 읽는 한국의 우울증


 2023년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서울시 개인병원 가운데 2017년 대비 가장 많이 늘어난 진료과목은 정신건강의학과로, 2017년 302개에서 2022년 534개로 76.8% 증가했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마음건강 진료비 지원’ 광고를 출근길 버스 안에서 보는 것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정신장애는 소수의 사람이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되고 있으며, 특히 우울증은 유전병이라는 오랜 낙인을 벗고 급격하게 의료 서비스와 사회 정책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우울증이 폭발적으로 의료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는 21세기로 넘어가는 일본에서 우울증이 갑자기 ‘국민병’이 되고 정신의학이 고통에 빠진 사회질서를 교정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심층 분석한 책이다. 1990년대 말부터 경기침체로 인해 약 10여 년간 매년 무섭게 최고 자살률을 경신해갔던 일본 역시 현재 우리와 유사한 고민을 했었고, 또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일본 사회는 만연하는 우울증과 치솟는 자살률의 문제를 무엇으로 읽어냈을까?

 당시 일본에서 우울증이 국민병이 된 거대한 변화는 무엇보다 정신의학이 일상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일본인들이 오랫동안 거부해왔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이미 1880년대에 독일로부터 정신의학이 도입되고 제도적으로 구축되었지만, 이는 심각한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일 뿐이었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일본에서 우울증이 특히 드문 증상으로 여겨졌던 것은 일본인들이 우울한 기분을 ‘미화’하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게다가 몇몇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가 시장성 없는 일본에 프로작의 홍보와 판매를 진행하지 않도록 설득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상황이 1990년대 후반 급격히 뒤집힌 것이다.

  ◇ 우울증이라는 ‘언어’의 역할
     - 생물학과 사회학의 교차 위에 정신의학의 혁신이 일어나다


 저자는 여기서 정신과 의사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경기침체로 지친 사람들에게 그들의 피로감과 무기력을 우울증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게 하는 효과적 역할을 했으며, 놀랄 정도로 높은 자살 수치를 보이던 일본인에게 자살과 우울증의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일본의 정신의학이 우울증의 사회적 성격을 드러내는 새로운 ‘우울증 언어’를 발명함으로써 일본인의 오랜 저항을 극복했다고 설명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그 전까지 생물학적이고 개별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 정신의학 언어를 사회적 문제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변형시켰다는 것이다.

 예컨대 과로 우울증에 관한 법의학적 논쟁을 통해 정신과 의사들은 깊은 경제침체와 무너진 평생고용 제도 속에서 회사에 대한 환자들의 자기희생적 헌신이 더 이상 보상받지 못했기에 우울증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새로운 설명을 통해 그들은 우울증을 경제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수많은 일본인들이 겪을 수 있는 집단적 고통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그로 인해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병의 경계에 대한 일본인의 사고방식과 국가 정책 및 제도가 바뀌면서 우울증은 회사에서 병가를 받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매우 희귀한 질병에서 최근 일본 역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질병으로 바뀌게 되었다. 새로운 우울증 언어를 통해 우울증은 사회적 고통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을 담는 ‘고통의 관용어’가 된 것이다.

 이렇듯 우울증은 단순히 유전적인 뇌 질환에 의한 병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되는 병이기도 하다.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듯 “정신장애는 삶의 괴로움의 표현이자 증명이고, 이러한 삶의 괴로움은 사회구조에서 생겨난다.”(11쪽) 저자는 또한 우울증이 그 나라의 정치적 상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며, 또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임을 거듭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과거의 문헌, 임상 실천의 관행, 제도적 변화까지 모두 고려하여 이와 같은 우울증의 복잡한 연대기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의 폭발적 의료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준다.

 ◇ 우울증의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 역사, 임상 실천, 사회를 가로지르는 탐구


 저자는 이 책의 각 부에서 우울증의 인류학적, 사회학적 변천을 1. 역사적 추이, 2. 임상적 측면, 3. 사회문화적 측면으로 나누어 우울증이라는 질병의 변화를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우선 1부 「역사 속의 우울증」에서 저자는 ‘정신병리적 우울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생겨나기 이전에는 일본에 우울증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또는 ‘이전에는 흔치 않았던 병이 어떻게 국민병으로 바뀌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울증의 역사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마음과 기(氣)의 정체, 때로는 미화되기까지 한 우울함이 서구 의학의 틀에서 멜랑콜리아와 신경이라는 개념의 도입과 함께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되고, 뇌의 병, 특정 유형의 성격으로 이해되어 생물학적 대상이자 의료화의 대상으로 포섭되는 과정을 폭넓은 역사서 연구를 통해 간결하고도 명확히 설명한다. 특히 지금까지 거의 연구되지 않은 일본에서의 우울증 변천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일본 정신과 의사들이 어떻게 우울증을 오늘날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질병들 중 하나로 성공적으로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2부 「임상 실천 속의 우울증」에서는 임상의 현장으로 이야기의 무대를 옮겨 입원부터 퇴원까지 의사와 환자의 상호작용에서 드러나는 우울증 서사와 의미의 구성을 다룬다. ‘환자의 고통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는가?’ ‘자살은 우울증과 어떻게 연관 지어졌는가?’ ‘자살은 의료화의 대상인가’ ‘죽으려고 굳게 결심한 사람을 자신의 의지에 반해 의사는 어떤 권리로 치료할 수 있는가’ 등 예민하고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저자는 적절한 거리를 두며 다양한 직종의 남녀 환자들과 여러 세대의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자살을 미화하기도 했던 일본의 문화적 토양에서, 감금과 통제라는 역사적 오명을 지닌 정신의학이 어떻게 정신과적 문제의 경계를 새롭게 그려내고 있는지 정신과 의사들의 고민마저 공감되도록 생생히 기술되어 있다.

 특히 8장에서는 일본 우울증 특유의 ‘젠더화’에 주목하여 정신의학적 설득이 실제로 환자 스스로의 우울증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구조화하는 데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본다. 서양에서는 우울증이 주로 ‘여성의 병’으로 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남성 역시 여성만큼이나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고통에 대한 선별적인 의학적, 사회적 인식이 놓여 있다. 여성들은 그들의 절망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에도 그 고통을 우울증의 구조적 원인과 연관 짓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울증의 경험은 성별에 따라 다른 형태를 취하는데, 이는 일본 여성들이 일본 남성들보다 더 많이 고통을 받거나 덜 고통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고통의 본질이 다르게 구성되었기 때문임을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3부 「사회 속의 우울증」에서는 병리적 대상으로서의 우울증을 병원 밖으로 옮겨 과로사, 과로 우울증을 중심으로 담론 분석과 제도적 변화를 설명한다. 여기서 정신과 의사들이 엄격하게 유지해온 임상적 우울증에 대한 개념적 통제가 무너지고, 제약회사, 의사, 행정관료, 변호사, 판사 등의 다양한 행위자에 의해 우울증의 의미가 지속적으로 협상되고 수정되는 유동적 맥락을 밝혀낸다. 현재의 ‘과로사’를 일본 문화에서의 ‘자결’과의 상이한 양상에 두고, 그 죽음의 책임에 대한 실로 방대한 논쟁과 소송 자료를 일례로 하여 핵심을 꿰어낸다. 과로자살 소송과 노동 정신의학에서 정신의학은 우울증의 실재적 존재를 설득하기 위해 대중적 언어를 제공했고, 사회적 의식이 덧붙여진 과학적인 정신의학을 만들어냈다. 나아가 정신약리학의 성격에 대한 대중적 논쟁, 산업에서의 직업정신과학의 출현 등 우울증의 의료화가 가져온 변화를 다각도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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